일을 다시 하게 됐다. 세 달 전에 퇴사하며 6개월에서 1년은 쉬기로 계획했는데 세 달 만에 일을 하게 됐다. 나는 분명히 쉴 계획이라고 주변에 알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쉬는 기간 동안 치앙마이에 한 달 정도 다녀오겠다는 계획도 입사 일정을 고려하면 불가능해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서 두 가지 선택지를 고민해 보았다. 하나는 차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쿄 여행이었다. 차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일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에 도쿄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급하게 여행 일정을 정해야 했는데 하필 일본의 골든위크 연휴 기간과 겹쳤다. 일본 여행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시기라는데 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골든위크 기간과 입사일 사이의 간격은 고작 3박 4일이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한 달과 첫 일본 여행을 생각하면 3박 4일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결국 골드위크 마지막 이틀을 포함한, 아침에 출국해 밤에 돌아오는 꽉 찬 5박 6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혼자 다닐 때 많은 계획을 하지 않는 편이다. 세부적인 계획 없이 지도에서 하고 싶은 걸 정하고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 속에서 그 순간만큼은 내가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어 좋다. 원래 이런 나인데 이번에는 급하게 여행을 오느라 더더욱 계획을 하지 못해다.
어찌어찌 여행을 다녔는데 하필 6일 중 3일 동안 비바람이 불었다. 비보다는 바람이 너무 강해 움직이고 보고 느끼는 것들이 쉽지 않았다. 강한 비바람은 즉흥적으로 움직인 내게 난관을 만들어줬는데,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는 비로 인해 루프탑에 올라가지 못했고, 무작정 갔던 저녁의 요코하마는 비바람이 너무 강해 바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금방 돌아왔으며, 비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걸어갔던 신주쿠 교엔은 휴일 다음 날이라고 열지 않아 강한 비바람을 맞으며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최악이었냐고 말하고 싶은 거냐 라면, 오히려 너무 좋았던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음의 연속이었다. 계획에 없던 입사, 계획에 없던 여행지, 계획에 없던 일정, 그리고 혼자 여행할 때 많은 계획을 하지 않는 나. 이런 계획대로 되지 않음의 연속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나의 계획들은 그래서 더욱 소박하게 느껴지고, 어쩌면 무조건 되어야 하는 것들일 수도 있었으나 결국 이마저도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소박하든 거창하든 계획은 꼭 되어야 하는 이유도, 안되어야 하는 이유도 없는 것 같다. 계획대로 안되어도 그다음으로 내가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 걸 찾고 얻으면 그걸로 되는 게 아닐까?
여행 첫날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시부야를 돌아다녔는데, 골든위크 기간 이자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많은 사람들에 지쳐갈 즈음 구글 지도에 큰 공원이 있어 바로 걸어갔다. 공원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공원 자체가 엄청 넓어 크게 체감되지 않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밖에 없었던 시부야 도심과 다르게 잔디나 벤치에 앉아 있거나 천천히 걷는 사람들만 있었다. 나도 벤치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차분한 시간을 보냈는데, 지쳐있던 내게 가장 아늑하고 편안한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도쿄 여행에서 내가 가장 잘했고 기억에 남은 순간은 바로 이 요요기 공원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존재조차 몰랐던 공간이, 미리 알아보고 계획했던 그 어떤 공간보다도 내게 가장 극적이고 이상적인 공간이자 경험이 되었다.
계획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경험을 만들고, 경험은 다음 계획을 만든다. 어쩌면 계획은 달성 여부보다는 경험과 시행착오를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여행 마지막 날 공항에 가기 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을 다시 기억하고자 요요기 공원에 갔는데 하필 점검으로 연못 접근이 막혔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쿄에 또 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다음 여행이 기대되기에 계획대로 안되어도 괜찮다.